♣ 열다섯살 엄마의 눈물 ♣
제 나이는 열다섯살.
딸이 귀한 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공주님처럼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과외까지 받았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시련은 소리 소문 없이 절 찾아오고 있었나 봅니다. 철없는 여중생이었던 전 그만, 과외선생님의 아이를 갖게 되었고, 여중생이었던 저를 곱게 볼 리 없는 어려운 시댁생활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둘째까지 임신했지만, 남편은 더 이상 제 사람이 아닌 다른 여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철없이 혁이와 운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제 능력으로 도저히 두 아이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면목은 없었지만 다시 가족을 찾게 됐고, 새 삶을 살길 원하는 가족은 큰 오빠의 호적에 혁이와 운이를 올려주었습니다. 당시 자립할 능력이 없던 저는 그렇게 자식을 조카로 만나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혁이와 운이는 내가 고모인줄 알고 자랐고, 엄마처럼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리고 20년... 내 아들 혁이가 결혼을 합니다. 엄마라고 나설 수도 없는 자격 없는 엄마지만, 마음으로나마 엄마 같은 인생이 아닌 행복한 인생을 살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루 앞둔 그 날, 혁이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가 왔습니다. "고모, 내일 결혼식장에 예쁘게 하고 오세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오늘 꼭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저 기억하고 있었어요. 사랑해요. 엄마! 이젠 좋은 사람 만나세요. 아빠, 아니 그 분 같은 사람 만나지 말고요. 엄마를 아끼는 사람 만나 지금이라도 행복을 찾으세요. 20여 년간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원망하고 증오했던 그였지만, 오늘은 사무치게 그립기도 했습니다. 모를 테지요 그 사람은.. 자신의 핏줄이 장가를 가고, 또 한 명의 핏줄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러 군대에 간다는 사실을..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제 저에겐 든든한 두 아들이 다시 생겼으니까요. 지혁아 제발, 한 사람만 사랑하며 예쁘게 살아가거라! 지운아 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렴. 오래 전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와 많은 감동을 주었던 사연입니다. 감동은 시간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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