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사랑 이야기

황혼(黃昏)에 솟구치다

sungsub song 2019. 8. 19. 11:26

부부의꽃(夫妻花)


 

황혼(黃昏)에 솟구치다


 

내겐 형님이라 부르는 이웃이 있다.
어느 따듯한 가을 날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어디를 다녀오세요. 물으니
집사람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란다.


 

오늘도 그의 손에는 팥죽이 들려 있다.
아내가 생각나서란다.
형님은 10년 이상을 홀로 거동도 못하고

 

 


치매에 반신불신인 누어만 있는 아내를 위하여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한 결 같이 아내 곁에서 지내기를 10년




피치 못해 아내 곁을 떠나는 경우라도
집에 오는 길에는 항상 그의 손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따끈따끈한 팥죽이 들려있다.

 

 

그러면서 항상 하는 말은 거동이 불편한 아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그런 세월이라도 길었으면 좋으련만
벌써 아내가 죽은 지 1년이란 세월이 지났단다.


 

그리고 몹시 안타까워한다.
만약 자기가 그 지경이 되었어도
아내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며
애써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천사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 천사가 아니겠느냐.
그런 힘든 세월을 살았던 형님을 보노라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며
아마도 형님에겐 끈임 없이 솟구치는 눈물의 물자루가
마를 날이 없었겠구나 생각했다.


 

세월은 그렇게 빨리 흘러갔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과연 부부란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이며,
정이란 또 무엇이더냐.

 

 

그리고 나이 먹고 병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젊은 날에는 사랑 하나만으로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사랑은
한 때는 활화산처럼 강렬하게 폭발하기도 했지만

 

 


그 사랑도 세월의 풍파 속에 삭으러드는 재처럼
까맣게 흔적만 남겼다.


 

때는 허전했다.
그러나 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토실토실 여물어 가는 알토란같이 여물어 간다.
그래서 정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익어가는 것인가 보구나.
세월이 흐를수록 형님처럼

알토란같은 정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

 

수 십 년 간 정 이란 이름으로
마치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부부애를 키워왔고,
사육시켜 왔고, 길들려 왔다.

 



참으로 잘 한 일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생각은 점점 키워나가야 한다.

매달리는 정은 진정한 정이 아니다.
이제 매달리는 정이 아닌 진정 아껴주는 정으로....


 

황혼이란 이름을 빌려
서로 아껴주고, 보담아 주며,

아스라이 떠오르는 정으로 거듭나리.

 

 

이제 비록 몸은 옛날 같이 않아 모든 일

뜻대로 되지 안치만 정 만은 형님을 닮아
황혼이지만 우뚝 솟구치는

 

 

그렇게 통 큰 질긴 정을 만들고 싶다.
이제 형님을 위하여 노사연의 우리에겐 란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옮긴글-

 

 

도니제티 - 사랑의 묘약 中 남몰래 흘리는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