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마음과 생각

아버지의 숨겨진가슴

sungsub song 2019. 4. 16. 16:21

늙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의 숨겨진 가슴       
                  

아버지란 
돌아 가신 후에야 자꾸만 생각 나는 사람이다
살구 꽃 곱게 피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누렁이 방울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사람이다
종일 비가 내리면 가슴이 아파 오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절대 돌 비석 같이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다
아픔을 삼키고 감정을 숨기고 살았을 뿐이다 
아버지가 무관심하고 엄해 보이는 것은 
아버지에게 남은 유일한 체면과 자존심이다

나의 아버님은 
자식들에게는 항상  엄하셨지만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곡식을 나누어 주시던
잔 정이 많은 따뜻한 가슴을 가지신 분이셨다

어쩌다가
어머니와 전날 부부 싸움이라도 한날이면
여지없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아무 말없이
부엌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주시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이셨다

군 입대를 위해 
착잡한 마음에 집을 나서며 인사 드리는데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세상을 안다며
무심하게 한마디 하시고는
삽을 어깨 메고서 서둘러 논으로 나가셨다

서운함 안고 
눈물 짓는 어머니 뒤로 하고 시외버스에 올라
버스 차창 밖을 무심히 내다 보는데
아버지 따라 농약 뿌리던 논두렁 길 위에서
땀에 절은 흰 수건을 흔드는 이가 보였다

삶에 찌들고 
세월 바람에 검게 그을린 나의 아버지이셨다
비 포장 도로 흙 먼지 날려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수건을  한없이 흔들어 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사랑 표현을 그렇게 멀리 에서 하셨다

자식들 모두 출가 후 
자꾸 소화가 안된다며 찾아간 병원 검진에서
말기 위암 수술을 받고 고향 집에서 투병 중 
자주 찾는 자식들에게 미안 하였든지
이제 그만 들 와,연락(사망)이나 가면 와라

아버지 특유의 
무뚝뚝한 음성으로 힘없이 말하시고는
다음날 자식들과 마지막 눈 인사도  없이
한 많은 67세 짧은 생을 그렇게 떠나 가셨다

아버지란 
늘 외롭고 뜨거운 가슴을 숨기고 살다가
따뜻한 마음 표시도 못하고 떠난 사람이다
깊은 정 꺼내 보이지도 못하고 가슴 한 켠
평생 고독을  부여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머니 마음은 늘 따뜻한 봄, 여름이요
아버지 마음은 쓸쓸한 가을,겨울이라 했든가
아들 앞에 선 나의 아버지 모습은 어떨까 ?
나는 아버지 닮은 가슴을 열어 보이고 싶다


                               조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