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가 웃는다.

무언가를 맹근다는 것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욕심이라는 것은 사람을 살게 맹근다.
사람답게,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맹글어야한다.
굳이, 물질을 이용하여서
또 다른 변형되어지는 것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살기위해서는 제 갈길을 맹글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걸음걸이를 배우고,
걷다보면, 친구도, 칭구도 맹글어야하고,
그래도 외롭다고 느끼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만나야한다.

그런데, 나는 내 길을 가면서, 원하지 않고,
상대에서 원하지않으면, 버려지고 버린다.
요즘의 시사에서는, "소가 웃는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소도 삶의 철학이 있을거다.
![[경주한우]내가 웃소- 웃는 소를 보셨습니까?](https://t2.search.daumcdn.net/argon/0x200_85_hr/CAJZfs7jALj)
가축이 되어서 사람옆에 있자니
생의 결론에서는 사람몸을 통해서 흙으로 돌아간다.
나도 죽으면, 얼마의 흙으로 남아질지는 모르겠지만,
흙으로 살다가 세월지나면 돌로 변신되어질 것이다.

윤회설을 믿지 않는다.
나는 '소"로 태어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알고 있는 것은 딱 한가지이다.
내 아버님 어머님 사이에서 태어났고,
내 자식들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살다가면 될것이다.

소는 사람들의 행위를 잘 모른다. 사람들은 자기의 바보짖으로
가만이 있는 소가 웃을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비판할 때
"지나가는 소가 웃는다'라고 말을 한다.
![[펌] 웃는 소](https://t2.search.daumcdn.net/argon/0x200_85_hr/CHKgMnwln5T)
어릴때부터 살아오면서 밟았던 땅은, 고귀한 삶을 살다가 간
넋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축적 되어진 흙이다.

최근 몇달에서
나는 어울리지 않는 꿈을 꾸면서 살았는 것 같다.
소가 웃으면, 나는 죽어서도 이렇게 흔하고 귀한 흙으로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 만지는 사람이, 죽어서도 나쁜 흙이 되어서
옹기의 재료로도 쓰이지 못할 것이라면...
다시 마음을 바로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는, 비웃음을 얼굴로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다.
소가 웃는다는 것은 행복할 때 일것이다.

손에서 놓았던 엔진톱을 다시 잡았다.
"구유"를 맹글기 위함이다. 진정으로 소가 웃게하기 위함이다.
세속으로 향했던 내 마음을 다시 바로세워서
바른걸음을 걸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와서 글을 쓸 때는, 언제나 한잔 먹었을 때 인 것같다.
내일은, 어린 소들을 위해서 작은 구유를 몇개 맹글어야겠다.

착하고, 예쁜 소들을 웃게하려면,
내 삶이 팔공산에서만 머물러야되겠다는
생각을 실천해 가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느끼는 것 같다.
소가 웃든 말든지 상관말고, 내가 진정으로 밝은 웃음을
내 얼굴에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모셔온 글
![구유.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알고 싶은 우리말]](https://t3.search.daumcdn.net/argon/0x200_85_hr/7VXG8oYDL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