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웃는다.
무언가를 맹근다는 것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욕심이라는 것은 사람을 살게 맹근다.
사람답게,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맹글어야한다.
굳이, 물질을 이용하여서
또 다른 변형되어지는 것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살기위해서는 제 갈길을 맹글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걸음걸이를 배우고,
걷다보면, 친구도, 칭구도 맹글어야하고,
그래도 외롭다고 느끼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만나야한다.
그런데, 나는 내 길을 가면서, 원하지 않고,
상대에서 원하지않으면, 버려지고 버린다.
요즘의 시사에서는, "소가 웃는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소도 삶의 철학이 있을거다.
가축이 되어서 사람옆에 있자니
생의 결론에서는 사람몸을 통해서 흙으로 돌아간다.
나도 죽으면, 얼마의 흙으로 남아질지는 모르겠지만,
흙으로 살다가 세월지나면 돌로 변신되어질 것이다.
윤회설을 믿지 않는다.
나는 '소"로 태어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알고 있는 것은 딱 한가지이다.
내 아버님 어머님 사이에서 태어났고,
내 자식들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살다가면 될것이다.
소는 사람들의 행위를 잘 모른다. 사람들은 자기의 바보짖으로
가만이 있는 소가 웃을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비판할 때
"지나가는 소가 웃는다'라고 말을 한다.
어릴때부터 살아오면서 밟았던 땅은, 고귀한 삶을 살다가 간
넋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축적 되어진 흙이다.
최근 몇달에서
나는 어울리지 않는 꿈을 꾸면서 살았는 것 같다.
소가 웃으면, 나는 죽어서도 이렇게 흔하고 귀한 흙으로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 만지는 사람이, 죽어서도 나쁜 흙이 되어서
옹기의 재료로도 쓰이지 못할 것이라면...
다시 마음을 바로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는, 비웃음을 얼굴로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다.
소가 웃는다는 것은 행복할 때 일것이다.
손에서 놓았던 엔진톱을 다시 잡았다.
"구유"를 맹글기 위함이다. 진정으로 소가 웃게하기 위함이다.
세속으로 향했던 내 마음을 다시 바로세워서
바른걸음을 걸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와서 글을 쓸 때는, 언제나 한잔 먹었을 때 인 것같다.
내일은, 어린 소들을 위해서 작은 구유를 몇개 맹글어야겠다.
착하고, 예쁜 소들을 웃게하려면,
내 삶이 팔공산에서만 머물러야되겠다는
생각을 실천해 가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느끼는 것 같다.
소가 웃든 말든지 상관말고, 내가 진정으로 밝은 웃음을
내 얼굴에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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